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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_정경빈_섀도우 Shadow_2020.10.14-10.20



 

정경빈 개인전

섀도우


Shadow

2020.10.14(수) – 10.30(금)

월-금 14:00-19:00 (토∙일 휴관)

주최 열두번의 밤, 인스턴트루프

후원 서울문화재단

도움 정진하


섀도우는 빛의 흔적이며, 밤(들)의 시작점 혹은 끝점이다. 그것은 어두운 가운데 빛난다. 그것은 또 얼굴 혹은 어떤 평면 위에 드리우는 반짝이는 가루들이며, 짙은 색조이다.

녹색이 주조인 커다란 네 개의 캔버스가 공간의 삼 면을 둘러싸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평면인 동시에 몸을 들여놓아 체험하도록 하는 3차원 공간이다. 거의 벽과 일체가 된 이 캔버스들은 자주 회화에게 문제적 대상인 벽을 바탕 삼아, 이미지가 투사되는 공간으로 몸을 이끈다. 이때 몸은 전체 신장으로 크기를 키우는 ‘눈’이 된다.

거대한 녹색의 평면은 풍경의 조각난 장면일 지도 모른다. 장면은 여름날의 습기를 머금은 풀숲이었을 수 있으며, 수족관을 가득 메운 물미역의 흐느적거림일 수 있고, 마구 자라나고 있는 생각의 머리칼일 수 있고, 숨이 막힐 듯하게 차가운 초록의 바다일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쉽게 부정되고, 렌즈 앞에 당겨지고 확대된 어떤 표면의 부분에 그칠 수 있다. 여기 보이는 것은 그저 어떤 그림자. 독해 가능한 여러 의미들을 단지 눈앞의 완전한 환영으로 재현/재구성하려는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면에 다름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풍경로부터 잘려 나와 기억으로, 시지각적인 경험의 재구성으로 확대되는 과정이 수반된다. 그리고 붓의 길, 던져지고 뭉쳐진 물감, 제멋대로 퍼지게 된 기포들이 남는다. 그 자체로 이미 투사와 환영의 놀음을 완성한 벽이 ‘회화’를 자처한다. 당신의 몸, 이제는 그만 비대하게 된 눈은 무엇을 경험하는가? 여기에 자리를 차지한 벽 혹은 회화는 어떻게 유효해지는가?


 


나는 내가 내 몸의 일부인 것을 잊는다, 캔버스에 유화, 210*460(cm), 2020.


 

이 전시는 <12번의 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기획자 1인과 작가 1인이 만나 큐레토리얼 실험을 연속하기로 표명한 해당 프로젝트는, 지난 6월부터 한 달에 하나의 전시를 열며 여러 번의 ‘밤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쌓아간다. 《섀도우》는 이 연이어 진행되는 ‘밤들’ 사이에 스스로를 하나의 작은 그늘로 마련한다.


‘섀도우’는 얼굴의 눈가나 볼 언저리에 다양한 색조를 주기 위해 쓰는 화장품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어떤 대상에 의해 가려져 빛의 양이 줄어든 자리를 가리키는 ‘그늘’에 해당하는 말이며, 빛이 반투명하게 드리우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전시는 커다란 캔버스의 회화를 공간에 가득 채우면서, 한 단어로부터 이 회화의 현재 상태를 은유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일렁이는 빛의 결과물이며 기억의 스크린으로서 이미지를 평면/공간 속에 놓으면서 말이다.


작가 정경빈은 최근의 개인전 《위로가 되는 환상들》(갤러리175, 2020.9.15-27.)에서 신체 크기의 커다란 캔버스를 사방에 드리웠다. 그리고 (병상, 좁은 큐브 등에 물리적으로) 속박된 신체가 ‘벽’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과정을 전제하여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 《섀도우》에서 역시 그는 벽 앞에 가로막힌 어떤 신체를 전제하며, 일상에서 본 어떤 풍경을 사진과 같은 매개 없이 기억에 의존해 재구성하고 투사한 화면을 보여준다. 요컨대 정경빈의 회화는 어떤 기억된 이미지의 재현이며, 그리는 신체의 제약을 받는 그림이다. 이때, 그리는 사람이 투사한 상(像)인 그림들은 자주 제3의 ‘보는 사람’에게 다른 읽기를 금지하는 듯 인다. 그럼에도 정경빈은 여러 겹의 물감 층, 붓질이 엉겨드는 불투명/반투명한 화면으로 회화 그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다른 신체들과 만나게 할지 고민한다. - 허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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