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_전민주_F329_EPISODE, UNSPECIFIED_2020.11.25-12.11

전민주 Jeon Minju
F329_EPISODE, UNSPECIFIED
2020.11.25. (Wed) - 12.11(Fri)
월-수 14:00-19:00, 목-금 15:00-19:00 (토, 일 휴관) 인스턴트루프 instant roof
기획 정희영
기술지원 이규환, 정진하(공간)
이미지 디자인 이한글
*이 전시는 12번의 밤 12 Nights의 일환입니다.
F329 상세불명의 이야기
2020.11.25
정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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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이 돌아 차가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조용하고 희미하게 산재하는 조짐은 아무도 모르는 어느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을 터다. 감각할 순 있지만 항의하거나 분노할 순 없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 집안에 숨어있는 시기이니까. 그렇게 안개와 같은 우울감이 시대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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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2.9 Major depressive disorder, single episode, unspecified’는 우울증을 일컫는 의학용어이다. 전민주는 앞단의 단어를 삭제하고 약화시킨 《F329_EPISODE, UNSPECIFIED》를 이번 개인전 제목으로 정했다. 대략 이런 뜻일 것이다. F32.9 상세불명의 이야기. 알 수 없는 이야기에 관한 작업이 전시장에 놓여있다.
작업은 단순하다. <Be Happy>는 전민주 작가가 총 11일, 하루 여섯 시간 동안 진행하는 퍼포먼스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전시를 하는 자와 전시를 보는 자가 모니터를 통해 서로 만나는 내용이다. 이때 만남 상황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발생한다. 작업실에 있는 작가는 트위치 채널(https://www.twitch.tv/f329_)을 통해서 자신이 준비한 영상을 보여준다. 이때 작가는 영상을 틀어둔 채로 자신의 지난 작업, 선물 받은 책, 충동적으로 만든 영상 등 대화의 소재를 계속 뻗어간다. 트위치 채팅창은 자유로운 머무름이 가능한 비물리적 장소로서 즉흥적인 상황을 발생시키는 추가적인 요인이다. 작가와 관객, 그리고 익명의 네티즌 간에 발생한 즉석만남은 거미줄처럼 엮여 자아와 타인이 연결되는 빈도와 강도를 적절한 높낮이로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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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여성을 위해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던 작가가 이번 개인전에서 만큼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는 의지를 전해왔다.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가치나 필요, 형식이나 내용에 모두가 자신을 내던질 때 전민주는 그 바깥에서 무언가를 전하려 한다. 이제 겨우 첫 개인전을 열려는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준비된 작업으로 자신의 능력과 패기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할 수 밖에 없는 다음 작업에 헌신하는 길을 간다. 과거의 헌신이 정치적·사회적 사명감이라면 이번 개인전에서의 헌신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몸을 무엇에 내던질지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가깝다.
그렇게 수수께끼 같은 영혼을 지닌 작가로부터 <Be Happy> 작업이 나왔다. 자신이 왜 불행한지도 알지 못하는 작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이 마주한 갈등과 모순을 그대로 받아내며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자연스럽게 작가는 썩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할 듯하다. 텅 빈 전시장이나 낮선 관객을 마주해야 하고 자신의 지난 영상을 보는 관객의 표정을 마주해야 한다. 퍼포먼스 중에 딴소리를 하는 네티즌이나 들썩이며 떠날 타이밍을 재는 관객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혹여 이 모든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전민주는 허무함을 마주할 것이다.
이 모든 현실을 직시하고서 작가는 오늘부터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복잡한 심경과 여러 태도들 사이에서, 비틀린 몸짓과 가식적인 말투 속에서, 자신을 가리고 또 드러내는 모종의 신호를 표출하며 작가는 작업 속 주인공이 된다. 과거로부터 온 작업을 관객과 공유하며, 복작스러운 내면을 현재의 퍼포먼스로 순간순간 표출하며 작가는 서사를 만들어간다. 사랑으로 다가갔음에도 타인이 될 수 없어 불명확해진 ‘지난 이야기’와 타인을 위하느라 자신의 중심을 살피지 못해 흐릿해져버린 ‘현재 이야기’를 덧대거나 찢어낼 것이다.《F329_EPISODE, UNSPECIFIED》가 지시하는 상세불명의 이야기는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전민주가 자신을 서사화할수록 작가는 작업을 통해 존립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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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보지 못한 그녀의 퍼포먼스를 떠올리며 상상한다. 나는 오늘 전시장을 찾으리라. 그곳에서 전민주 작가를 마주보며 오래 앉아있으리라. 까슬까슬한 가시로 덮힌 밤송이 같은 이 작업은 이렇게 시작하리라. “아주 오래전 세상을 견딜 수 없어 작가가 된 사람이 있어요. 오랜 시간 누군가를 애타게 위해보려 했지만 이제는 여기 혼자 앉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행복을 그리워하고 있지요.”
우리가 잃어버린, 다시 돌아가야 할 자신에게 건네는 상세불명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작가의 영혼이 작업과 현실에 동시에 깃들 수 있는 틈새를 내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