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_이준용_사랑하는 마음을 기념품으로 간직하세요_2021.01.06-01.29


이준용 LEE Joonyong

사랑하는 마음을 기념품으로 간직하세요

Keep your love as a souvenir

2021.1.6(WED)-29(FRI)

수-일 14:00-19:00 (월화 휴관)

인스턴트루프 instant roof


기획 이현

기술지원 정진하

후원 서울문화재단




준용 씨에게,

지난 3월의 편지 잘 받았습니다.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두툼한 도록에 끼워둔 A4 종이엔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죠. “전시 한다 마음먹으니 작은 돌멩이 삼킨 느낌입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생각 정리될 즈음 한번 뵈어요. 연락 감사합니다. -준용.” 손글씨로 깨작깨작 쓴 글을 읽으며 목구멍에 걸린 작은 돌멩이의 둔탁함을 상상해봤습니다.

4년 전 저는 기획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하이트컬렉션 2017)에서 준용 씨의 그림을 처음 보았어요. 넓디넓은 전시장의 가장 구석진 마지막 방, 새까만 벽을 규칙 없이 채운 낱장의 그림들에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날것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죠. 재밌는 사람이네 생각하고 전시장을 나서는데, 여덟 명의 단체전이었는데도 그 희한한 드로잉만 머릿속에 내내 맴돌더군요. 그날 혼자 기록한 메모장에는 이런 글이 남았어요. “이준용 작가는 앞으로도 여러 전시에서 자주 볼 것 같다.” 그러니까 일 년 뒤, 준용 씨의 첫 개인전이 아니었다면 한여름 서울의 동쪽 끝 미술관까지 힘들게 찾아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미안한데 너무 슬퍼서 말해줄 수 없어요>(소마드로잉센터 2018)라는 이름의 전시에는 삐뚤빼뚤 선으로 그린 작은 사물과 그보다 작은 크기로 낙담하는 사람들이, 많은 종이와 적은 기둥과 하얀 벽 곳곳에 깨작거리며 모여 있었어요. 한참을 잊고 살았는데, 이 편지를 쓰며 예전 일기를 찾아보니 저 혼자 이런 후기도 남겼더라고요. “도저히 답 없는 삶과 형편없는 연애와 그럼에도 어디엔가 있다고 믿고 싶은 희망이 뒤엉킨 세계. 못나고 찌질해서, 그게 나와 닮아서 너무 좋았다.” 그 글을 다시 읽은 후에야 제가 왜 아무런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준용 씨를 참여 작가로 선택했는지 깨달았어요. 항상 생각하지는 않지만, 겨울철 정전기 튀듯 떠오르는 과거 저편의 기억.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란 찬장의 먼지 쌓인 기념품 같은 것이겠지요.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기념품으로 간직하세요>(2021)에 89장의 마음과 1장의 빨래방을 놓았어요. 때 묻은 감정을 한 바구니 모아 세탁기에 쏟은 다음, 깨끗해진 그것들을 잘 말려서 차곡차곡 서랍에 개어두었죠. 이곳에 오는 사람들과 그 마음을 나누어 입어보기를 바라면서요. 서랍에 비치된 89장의 마음은 그 색과 질감과 바램의 정도가 모두 달라서, 들인 지 얼마 안 된 새 마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오래 입어 꼬질꼬질 닳은 마음도 있어요. 환절기마다 버릴까 말까 고민되지만 잔잔한 애착이 남은 것, 선물로 받아 소중히 간직하게 되는 것들도요. 내가 입고 있는 마음을 세탁하는 방법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늘 흐트러짐 없는 말끔한 상태를 유지할 텐데, 우리 대부분의 실력은 형편없을 따름이에요. 필요 이상으로 뜨거워서 쭈그러지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다가 망가트리고, 충분히 마르기도 전에 접어서 꿉꿉한 냄새가 나죠.

그 습기 찬 마음을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준용 씨도 알다시피 저는 지난겨울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요. 저를 엄마처럼 아껴주던 선생님이 사고로 떠난 일이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만나기로 약속했던 사람이 예고도 없이 영영 사라졌는데, 이 사회가 사람을 처리하는 방식은 얼마나 신속하고 빈틈없는지 눈물 흘릴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렵더군요. 은행 번호표 뽑듯 명복 빌 차례를 대기하고, 꾸벅꾸벅 졸다 깨면 ‘여기가 네가 울 자리야’ 친절히 안내하며 플라스틱 모형 같은 유해를 보여주고, 다음 슬픔의 진행을 위해 서둘러 짐 챙겨 나오고. 거짓말처럼 완벽히 세팅된 무대에서 대본 받은 조연 역할을 수행했지만, 속마음은 물음표만 연신 따라다녔죠. 현명한 사람이라면 지정된 공간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적당한 슬픔만을 툴툴 털어 보냈을까요? 균일화된 슬픔을 따르지 못한 뒤늦은 마음은 미련한 걸까요? 저는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씩 작별을 준비합니다. 슬픔은 장례식장도 화장터도 아니고 길에서 오더라고요. 그 사람이 살던 동네 근처를 지날 때, 생전에 만나곤 했던 장소를 회상할 때, 내가 선물한 꽃다발을 들고 아이처럼 기뻐하던 얼굴이 다시 보고 싶을 때, 유독 좋아하던 라일락 향기를 떠올릴 때, 손에 봉숭아 물 들여준다고 집에 놀러 오란 것을 왜 미뤘지 자책할 때. 슬픔은 그냥 일상에서, 걸어가던 길에서 갑자기 밀려와 대리석의 밀도로 마음을 짓누르더군요. 얼마 전에는 그리움이 넘쳐 문자도 보내봤는데, 답장이 영원히 올 수 없단 사실에 이별이 더욱 또렷해져 후회하기도 했어요. 이제 저의 삶에서 후암동은 예전의 후암동이 아니고, 라일락은 똑같은 라일락이 아니겠지요. 뒤죽박죽 순서지만, 마음이 어디 줄 서서 오나요.

우리는 너무 서툴러서 마음을 다루는 요령도 없지만, 그래도 저는 슬픔이 능력이라 믿어요. 너의 우울을 내 것으로 상상해 감정을 연결하고, 네가 없는 이 세계의 무의미함을 이해하는 능력. 너와 나는 같은 언어를 사용해 쉽게 의견을 주고받지만, 관계는 보고 들리는 것 이상의 교감으로 이루어진다고 서로 동시에 믿는 능력. 진심으로 슬퍼할 줄 아는 능력이란 결국 사랑하는 능력이겠지요. 이 광활한 우주에서 누군가를 남들보다 특별히 더 좋아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희박한가요. 그건 정말 기념품으로 간직할 만한 일일 거예요. 그러니 사랑하는 마음을 기념하세요.

6월을 첫 만남으로 함께 만들어온 우리의 전시가 1월에 열렸네요. 이 전시는 제게 올해의 가장 이른 추억이 되겠지요. 이제 작은 돌멩이는 어디쯤 넘어갔을까요? 눅눅한 마음에는 곰팡이가 슬기 쉬우니 조심하세요. 일렁이는 파도에 멀미가 나면 쉬어 가세요. 어디서든 항상 건강하세요.

2021년 1월을 기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