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_정해나, 정진우_침묵이후_2020.8.12-8.30

침묵이후
Post Silence
2020. 8. 12. - 8. 30.
전시 관람: 수.목.금.토.일
8.26 14:00-21:00
회화 정해나
안무·공연 정진우
큐레이팅 백필균
주최 야영자
후원 서울문화재단
협찬 아트컴퍼니 도아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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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어제 F에게 말하지 않은 말을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가 10년 전부터 속에 묵혀둔 말은 어제 배출될 기회를 잃었다. H는 앞으로 당분간 그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식이 돌아온 그는 어렵지 않은 단 하나의 일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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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나는 한지 위 고요한 자신의 그림자에 따라 물과 먹이 머금어진 붓을 쓸어내린다. 젖어든 한지가 마르고,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형상들이 문득 누군가를 닮은 듯 느껴진다. 그가 그린 존재의 긴 머리카락은 얼굴 앞 한 점으로 모여 이목구비를 덮고 있다. 그는 아무 것도 보고, 듣고, 말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며, 종국에 자신의 아우성치는 입마저 땅에 묻으려 한다. 얼굴을 숨기며 스스로 침묵의 길을 걷는 그 또는 그의 옆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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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는 춤을 시작하기 전 무대 공간으로 자신이 담기기를 기다렸다. 그는 무대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자이다. 물보라가 멈출 때까지 그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수면이 잔잔해진 공간에서 그는 말 없는 존재들의 진동을 조심히 가늠하며 자신의 몸에 그 상(像)과 무게를 더해갔다. 그의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의 춤은 공간의 모든 떨림을 흡수한 몸의 이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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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이후〉는 같은 제목의 전시가 열리는 장소를 배경으로 퍼포머가 전시장 안밖을 오가는 움직임을 담은 안무 작품이다. 퍼포머는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다른 실내외 조명과, 안톤 베버른의 작품 27~31번 가운데 임의의 한 곡을 배경무대와 음악으로 설정한 차이 속에서 그 만의 즉흥무를 반복해서 수행했다. 선반과 오디오, 정해나의 작품들, 조명기기들이 무대에서 동일하게 배치 되었고, 퍼포머는 매회 다르게 움직였다.
작품 〈침묵 이후〉은 매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시점에서 끊김 없는(one take) 영상으로 촬영되었다. 편집영상은 촬영본의 좌우가 반전되었는데, 이는 마치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영상이 전시장소에서 상영될 때 관람자가 위치한 실제 공간과 영상의 공간 각각에 대해 지각하는 경험이 하나의 소실점에서 만나는 선들을 따라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도록 설정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13편의 촬영영상 중 3편을 상영한다.
전시의 요소들은 서로에게 기술로서 차별적이나 기호로서 연계적이다. 정해나의 회화는 댄스필름의 화면 구성에서 정진우의 안무에 대한 일종의 복선으로 등장하고, 전시의 연출(mise-en-scene)에서 춤의 다양한 동작들을 하나의 함축된 이미지로 번역한다. 정해나가 부엌의 개수구를 막은 유리대 위에 사각형의 한지를 중첩하거나, 창문을 막은 벽 위치에 종이 띠로 창틀의 형상을 재현한 콜라주 작업은 인스턴트루프가 제4의 발화자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협업의 역할을 함의하는 동시에, 안무와 그 영상에서 주요한 소재인 '틀(frame)'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역으로 정진우의 안무와 안톤 베버른의 음악은 다른 전시요소의 물질적 점유를 비물질적 영역으로 확장한다. 전시에서 정진우의 안무는 정해나의 회화 속 형상을 자신의 정지된 움직임이자 상대역으로 바라보고, 그것의 전후를 상상하거나 무언가에 반응하는 동작들을 만들어간다. 베버른의 악기편성, 선율, 리듬, 화음에서 나타나는 대칭적이며 대위적인 모습은 〈침묵 이후〉 영상의 공간과 실제 전시공간이 연결되어 그 중심으로부터 펼쳐진 데칼코마니를 상상하게 하고, 정해나와 정진우 두 작가의 협업예술이 둘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하나의 덩어리로서 합쳐지는 것에 대한 의미를 투영한다.
전시장 한편에 배치된 서로 다른 두 알약들은 그것들의 복용자에게 함묵증을 부작용으로 유발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문구와 같이 배치되어, 전시 작품들과 관람자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장치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 메타포는 전문약사라는 또 다른 학제의 참여주체를 조명해서 전시에 대한 중의적 접근로를 열어놓는다.
무대, 좌대, 영상의 화면구성 등 같은 공간의 다층적 정체성에 주목한 '침묵 이후'의 시선은 정해나의 회화 속 존재와 정진우의 안무 속 퍼포머, 그리고 방문자들의 보이지 않는 발자국들을 따라 전시장 밖 골목길로 향한다. 전시는 이 글이 전제한 대로 누군가의 ‘입 속'에서, 또는 누군가의 말이 공중으로 뱉어진 또 다른 '입 밖'에서 그 입을 여는 일이다. '침묵 이후', 클라인의 병 표면에 나름의 지도를 그리며 각자의 위치에 대해 가늠한다. 언제라도 그것들로부터 도주할 수 있도록. -백필균

정해나, 반쯤 마른 사람, 한지에 먹, 30×30cm , 2019

침묵 이후, 단채널비디오, 4K ,사운드, 컬러, 7분 51초, 안무 및 공연 정진우, 편집 비공개영역, 2020
12번의 밤
침묵이후
인스턴트루프
2020. 8. 12. - 8. 30.
회화
정해나
안무·공연
정진우
큐레이팅
백필균
주최
야영자
공동 주관
백필균
인스턴트루프
후원
서울문화재단
협찬
아트컴퍼니 도아이도
제약 자문
임강석
기술 자문
정진하
영상 및 공간 디자인
비공개영역
도움 주신 분
이양헌
12 Nights
Post Silence
Instant Roof
12- 30 August 2020
Painting
JUNG Haena
Choreography and Performance
JUNG Jinwoo
Curated by
PAIK Philgyun
Organized by
Campers Collective
Hosted by
PAIK Philgyun
Instant Roof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Sponsored by
Art Company DOIDO
Consulted Medicine by
LIM Kangseok
Consulted Engineering by
JUENG Jinha
Film and Space Design
Unopened Zone
Acknowledgement
LEE Yangheon
*본 전시는 <12번의 밤 12 Night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립니다.
**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