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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_오민수_전기는 흐른다_2020.6.12-6.28



 

전기는 흐른다 Electricity is Running

2018년 8월 6일 새벽 4시 12분, 대전 소재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노동자 김모 군(23)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의 원인은 감전. 김모 군은 근무가 끝나갈 무렵 작업장 바닥 물청소를 지시받았다고 한다. 이미 누전 상태였던 컨베이어벨트에 물과 그의 몸이 함께 닿아버렸고, 열흘 뒤 숨을 거뒀다. 사고가 일어난 날, 그 계절은 꽤나 무더웠을 테다. 오민수는 퀭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휘젓는 선풍기 앞 빠르게 몸을 움직여 일하는 일꾼들의 모습, 그 눅진하고도 차가운 기계 표면의 날선 충격에 까맣게 타버린 새파랬던 몸을 생각했다. 그의 개인전 《전기는 흐른다 Electricity is Running》는 이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는 당시 작업 혹은 사고 현장을,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죽음의 과정과 순간을 사운드 설치와 이를 왜곡, 굴절시키는 기계적 장치를 통해 재구성한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어둑한 분위기 속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7개의 스피커 모듈을 마주한다. 스피커를 감싸는 금속 상자는 빛을 날카롭게 반사시킨다. 스피커 출력부 앞으로 파란 원반이 모터 회전축에 매달린 채 자리하고 있다. 모듈에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찰나, 일제히 작동을 시작한다.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모터의 동력은 파란 원반에 전달되고, 이는 시계추의 반복 운동,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의 움직임과 째깍거림을 흉내 낸다. 이때 모든 시계침은 역방향으로 회전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사고가 일어난 ‘4시 12분’에서, 12분을 거슬러 사고 직전의 순간으로 타임워프를 시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치 레퀴엠을 연상시키는, 끔찍하게 느리고 소름끼치는 음원이 재생된다. 이어 사운드 퍼포먼스를 펼치는 7개의 스피커 모듈은 각자 물류센터 내 노동자의 역할을 도맡는다. 물품 박스의 송장 바코드를 스캔하는 ‘삑삑’ 소리를 쉴 새 없이 내지르다가도, 이내 박스를 옮기는 바쁜 발걸음이 바닥과 부딪히는 마찰음을 낸다. 작업장의 중간 관리자 정도로 추측되는 이의 단말마 외침도 들린다. 당최 힘내라는 독려인지 핀잔인지 모를 그의 말소리는 선풍기 바람에 썰려 나간다. 흔히 ‘물류센터 알바의 하이라이트는 상차’라고들 하지 않던가. 바코드 삑삑거림, 농구 코트 위 선수처럼 점점 격렬해지는 발소리, 박스를 집어던지고 쌓고 무너지는 파열음이 온데 뒤섞인다. 노동 강도가 고조되며 ‘번-아웃’되는 일꾼이 생기듯 속도를 높이던 모터마저 삐걱댄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잠시 고요를 되찾지만, 곧장 서걱대는 빗질 소리가 들려온다. 먼지를 쓸어 담고, 바닥에 물을 뿌리며 청소한다. 온갖 먼지를 머금은 채 소용돌이치는 물이 하수구로 휩쓸려 내려간다. 오민수가 시간을 되돌린 물류센터에서는 다행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박스를 분류하고 적재하고 상차하는 와중에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는 비참했던 죽음을 무마해보려는 것일까? 그런데 왜 하필 장송곡을 들려주는 것일까? 오민수는 날카롭고 뭉툭한 소리가 교차하는 자신의 작품을 예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애도’의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되, 그 죽음을 재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가 만들어낸 한없이 과격한 사운드와 기계적 움직임은 비극적 사건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파국을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앞서 바라봄’의 경험은 단순히 물류 노동 현장의 시스템을 향한 경고만은 아닌 것이다.

한편 오민수는 이번 작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 운동을 적극 활용한다. 작품의 주된 매체인 전기와 소리는 모두 파장을 통해 전파되는 에너지다. ‘감전사한 노동자’라는 내용과 ‘전자기술 기반의 작업 방식, 음파를 분절시킨 감각’이라는 형식을 ‘에너지와 파장’이라는 키워드로 적절히 엮어냈다. 약 24분가량의 재생시간 동안 지속되는 사운드도 다소 과격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편집 기법을 통해 소리 파장을 변환, 왜곡시킨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전자기술 기반의 작업을 하는 오민수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거친다. 때문에 오작동과 오류를 일으키는 부분이 어디인지 치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끝까지 찾아낼 수밖에 없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작가로서 그가 ‘노동 현장’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 개인전 《후진하는 새벽》(2019)에서 보여준 고장난 설비와 파손된 상품이 비대해진 물류 시스템의 필연적 오작동을 증명했다면, 이번 전시 《전기는 흐른다》는 그 필연적 현실 속에서 희생되는 노동자 개개인을 조명한다. 오민수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그러하듯, 우리의 사회와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오류를 직시하고, 갱신하기를 기원한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오늘날 고장 난 노동 현장에서 죽어간(갈) 모든 노동자를 애도하는 단막극이자, 그곳의 압축판이다. / 조현대

 

오민수 개인전 / 전기는 흐른다 Electricity is Running

2020.6.12 (Fri) - 6.28(Sun) 14:00-19:00_매주 월·화 휴관

인스턴트루프 instant roof 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 19-6

floor plan

전기는 흐른다 Electricity is Running

스텝 모터, 알루미늄, 스피커 유닛, 아두이노, 7채널 사운드 24분, 2020

(작품은 1일 총 10회, 매시 정각과 30분에 재생됩니다. 이에 따라 대기 시간이 발생하거나, 동시 입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credit

큐레이터 조현대

작가 오민수

협 업 조민현(사운드), 장영민(테크니션)

도 움 김현진, 양현민, 정진하

기획지원 12번의 밤

후 원 서울문화재단

Special Thanks to

후니다킴, 아트ENG 유병선 사장님

 

* 본 전시는 인스턴트루프에서 진행하는 2020년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사업 12번의 밤 /12nights의 일환입니다.

*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인스턴트루프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방문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제작한 <전자출입명부(QR코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QR코드 발급은 현장에서 친절하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작가 노트



<전기는 흐른다>는 이북명의 동명 단편소설 「전기는 흐른다」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이북명은 식민지 시대 당시 조선프롤레타리아 동맹 카프에 소속된 노동자 출신 문인이었다. 그는 1932년 단편소설 「질소비료공장」으로 등단하였다. 단편소설 「질소비료공장」은 이북명 자신의 실제 노동 경험을 바탕(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의 3년)으로 집필되었다. 그는 1930년 노동시위로 검거되기 전까지 공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며 일제강점기 조선의 열악하고 위험천만한 노동 환경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나의 이번 작품 <전기는 흐른다>는 1932년 발표된 이북명의 단편소설 「질소비료공장」에 나타나는 노동 현장의 청각적 묘사와 심상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이북명의 「질소비료공장」이 발표된 이후, 8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2020년이 되었으나, 대한민국 노동 현장에는 아직도 죽음의 위협이 늘 존재한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노동 현장 속 죽음의 그림자는 88년 전 소설 속에서 묘사된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똑같은 양상으로 2020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나, 최근의 노동은(치밀한 마케팅 전략에 따라) 첨단기술의 매끈한(혹은 친근한) 껍질 뒤에 감춰진 채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확대하고 싶었다. 노동 현장 바깥으로 들리지 않는 소리에 증폭기를 달아주고자 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확한 진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개를 조금씩 돌리며 은폐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을 똑바로 직면하기 위해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2018년 8월 6일 대전 대덕구 ‘CJ-대한통운’ 신탄진허브에서 당시 일용직으로 근부하던 23세 김모군은 퇴근하기 20분 전 컨베이어벨트 아래를 청소하다가 컨베이어벨트의 누전된 전기에 다리가 감전되는 사고를 당하였다. 당시 사측은 김군을 구하기 위한 조치를 빠르게 취하지 않았고, 병원에서 10일간 사경을 헤매던 김모군은 8월 16일 사망하고 말았다. 사고 이후 근로관리공단의 조사 결과 50여대의 컨베이어벨트 중 15대 이상의 기계에서 누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근로관리공단은 사측에 시정조치를 명령하였다. 사측이 감전을 막기 위해 컨베이어벨트에 설치해야 했던 누전차단기의 가격은 단돈 천 원이었다.

현장에서의 사고라는 것은 불가역적인 우연과 필연의 중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군이 아닌 그 누구라도 죽음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며 당시 노동자들의 목숨은 우연에 맡겨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측이 비용 절감을 위하여 천 원짜리 누전차단기를 달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별의 거리를 망원경으로 측정할 때 천문학자들은 도플러 이론을 사용한다. 도플러 이론에 따르면 지구에서 먼 별은 붉은색으로, 지구에서 가까운 별은 푸른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색깔의 스펙트럼으로 거리 분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도플러 효과란 파동원과 관찰자의 상대속도에 따라 진동수와 파장이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도플러 효과에서는 색깔도, 소리도 모두 파장이 된다. 전기 또한 일종의 파장이다. 전기는 전류 움직임의 반복을 통해 초당 50~60Hz의 파장으로 전류를 흐르게 한다. 디지털로 된 소리의 경우 0과 1의 파장으로 나타난다. 파장이 가까워지면 고음, 파장이 넓어지면 저음이 된다.


밤하늘에 빛나는 일곱 개의 별들은 각자의 파장으로 지구 위의 우리에게 도달한다. 공교롭게도 우리 민속신앙 중에는 북두칠성을 향해 소원을 비는 ‘삼신 신앙’이 존재한다. 삼신은 인간의 탄생과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 일곱 개의 별을 띄우고 소원을 빈다. 그가 퇴근하지 못한 그 날, 그 20분을 끝없이 돌이킨다. 죽음과 생 사이, 메울 수 없는 파장의 깊은 빈틈에 염원의 소리와 노래를 담아 이제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다.


눈뜨는 순간 우리 앞에 있죠

행복한 시간들을 느낄 수 있죠

더 좋은 세상 이뤄낼 수 있죠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가 있죠


벅찬 새날을 열어요

손에 손을 맞잡고 미래를 향해서 달려 나가요

멀리 더 높이 날아요

하늘 같은 기쁨을 만들어 가는 곳

함께 즐겨요


We`re the Best CJ

내 꿈이 그대 꿈이 될 수 있죠

함께이면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죠

믿음과 감동 아름다운 미래

진실한 마음이면 나눌 수 있죠


― 성시경, CJ CM 로고 송 가사 전문


<전기는 흐른다>


작품 <전기는 흐른다>는 어두운 밀실에 부착된 일곱 개의 스피커와 아두이노 기계 장치로 만들어진 설치 작품이다. 일곱 대의 스피커 앞에는 선풍기의 날처럼 생긴 기계 장치가 각각 달려있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와 기계 장치의 움직임은 서로 협응하며 24분 동안 하나의 움직임을 재생한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전시장 내에서 재생되는 24분 동안의 퍼포먼스를 시청하게 된다. 공간의 크기에 따라 세 명에서 네 명 정도 되는 소수의 관객만 동시 시청이 가능하다. 아두이노로 설계된 각각의 모듈은 사운드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계산된 움직임을 보여준다. 선풍기처럼 돌아가는 기계 장치는 시계 초침과 노동자들 팔의 움직임을 재현한 것이다. 관객을 향한 청각적, 촉각적 전달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위협적인 편이기에 전시장 내에서 관객들은 안전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 재생 도중 작품을 손으로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작품은 비인간적인 속도로 진행되는 실제 노동 현장의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을 청각적으로 포착한다. 일곱 개의 모듈이 보여주는 각각의 움직임은 노동 현장의 리듬과 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재생되다가 멈추는 사운드와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정지하는 기계 장치들은 관객에게 사고 현장의 모습을 심리적, 정신적으로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덧붙여, 소리의 파장이 이동하는 속도와 그 파장을 전시장 내부에서 재구성하는 셔터의 움직임은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노동 현장을 신체적으로 지각할 수 있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일곱 개의 스피커와 모터, 회전하는 셔터가 달린 기계 장치 앞에서 관객은 사고사한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의 시점으로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죽음을 앞둔 노동자의 영혼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게 된다.


작품 안에서 관객이 느낄 바람의 물리적 촉각은 사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청각은 촉각이 되고, 촉각은 우리에게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했을 노동의 상황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종착역이고 죽음을 향한 공포 또한 그림자처럼 우리를 평생 따라다닌다. 노동 현장에 들어서는 노동자 중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거나, 예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을 끔찍한 사고의 대상자로 상정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의 필연을 수용하지 못하며 자기 자신이 정지한 상태 그대로 영원하리라 믿는다. 이 작품 내에서 관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속도를 지각하게 된다. 속도를 만들어내는 기계 장치의 움직임은 수평적인 이동에서 수직적인 이동이 되고, 마침내는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회전하는 기계 장치 앞에서 관객은 정지하게 된다. 죽음을 잊기 위해 언제나 같은 곳에 한없이 멈춰서는 사람들처럼.


오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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