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_조민아_비껴진 자리에서_2019.08.09-08.23

14 Aug 2019

 

 

 

 

비껴진 자리에서

 

2019.8/9(금)~8.23(금), 월요일 휴무

관람시간: 1:00~6:00 p.m

장소: 인스턴트루프,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19-6

후원: 서울문화재단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관심이 있다. 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그 이유와 관계들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나의 위치와 환경에 연관되어 있다. 지난 몇 년간은 젊은 세대의 소모적인 무의미한 노동과 불평등한 구조 안에 서 살아야 하는 삶의 모습들을 작업의 소재로 삼아 작업을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룰 속에서 움직여지는 보편적인 인물들을 그리며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권력자를 생각했지만, 작업을 진행할수록 결국 권력자의 유무가 아닌 우리가 모두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룰이라는 생각으로 전환되었다. 아마 이 부분은 나의 작업에서 지속해서 깔리는 의문일 것이다. 불평등이라는 것을 포함하는 사회적 문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 평등이 꼭 선한 영향력으로 발현되지는 않을 것이 다. 나의 작업에 있어 불평등은 결국 주류, 보통의 존재들이 아닌 약간은 빗겨져 있는 것들이다. 이번에 작업의 소재로 들여온 비둘기는 작업의 표현적인 부분에 있어서 의 변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이유기도 했지만, (이전의 작업은 인물들이 주로 등장하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애완견, 묘를 제외하고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비둘기에 대한 보편적인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었다. 200건의 댓글이 달렸는데 ‘혐오’, ‘불쌍함’, ‘귀여움’, ‘무서움’ 등등 상반되는 의견들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비둘기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타자를 바라볼 때 가져야 하는 관용의 자세와 더불어 내적으로는 두렵고 싫은 양면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써 겪는 차별과 위험의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난민’ 이슈에서 인도적으로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주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결국 왜 우리는 다른 이들을 다른 이들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는지, 보편성을 강조하며 살아가야 하는지가 최근에 든 의문이다. 88만 원 세대도, 비둘기도 존재하지만 사회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개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측은하지만 나의 공간과 재원을 나눌 수 없는 공생할 수 없는 존재들로.

 

조민아

소란 (Disturbance) 장지에 채색 116.8x91cm 2019

 

탐 (Avarice) 장지에 채색 24.2x33.4cm 2019

 

의도된 장애 (Intended disorder) 장지에 채색 31.8x41cm 2019

 

아늑한 곳 (In a cozy place) 장지에 채색 56x92cm 2019

 

홀로서기 (Standing alone)장지에 채색 92x56cm 2019

비둘기, 우울하거나 무미건조한, 암울하거나 명랑한 도시우화

 

고충환 / 미술비평

 

비둘기는 도시적인 새다. 도시 어딜 가나 비둘기가 없는 데가 없다. 크고 작은 광장과 공원은 물론이거니와 지상 지하철 플랫폼에도 한길에도 심지어 도로 위에도 비둘기는 어김없이 있다. 처음부터 도시에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 산비둘기가 없지 않지만, 왠지 모든 비둘기가 도시에 살기로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좋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길들여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같이 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새 비둘기는 천덕꾸러기가 돼 있었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마세요. 스스로 먹이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비둘기가 좀 모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는 팻말이나 플래카드다. 비둘기를 위한 것일까. 비둘기를 향한 사람의 이타심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아무 데나 똥 싸고 보푸라기 휘날리는 것이 싫고, 예고도 없이 날아오르면서 사람들을 놀래 키는 것이 싫고, 구구거리면서 연신 앞뒤로 머리를 주억거리며 걷는 것이 싫고, 도무지 감정이 있을까 싶은 무표정한 눈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때로 전기 합선을 일으킨다는 증명되거나 증명되지 않은, 또 다른 의심스러운 이유가 추가된다. 그 밖에도 비둘기가 싫은 이유로는 얼마든지 들 수가 있다. 이 이유는 합당한가. 비둘기가 감정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가 있는가. 비둘기가 타고난 몸짓이 싫은 이유가 될 수가 있는가. 그냥 싫고 무조건 싫은 거다. 흔해서 싫고, 시도 때도 없이 눈에 밟혀서 싫고, 둔해서 싫고,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것이 꼭 나는 흉내를 내는 것 같아서 싫고, 주억거리는 꼴이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싫다.

여기에 핵심이 있고, 작가가 비둘기를 그리는 이유가 있다. 바로 비둘기와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이며, 비둘기를 통해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엄밀하게는 그저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이유도 없이 싫은 비둘기처럼 흔한 사람들이고, 보통 사람들이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고,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지만 그들 탓에 사회가 돌아가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다. 이 선남선녀들을, 필부필부들을 조르주 바타이유는 잉여인간(실제로는 잉여)이라고 부르고, 조르주 아감벤은 벌거벗은 인간(호모사케르)이라고 부른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제일주의원칙과 효율성극대화의 법칙에 의해 견인된다. 그런 만큼 경제성이며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조르주 바타이유는 그렇게 변방에 처한 것들을 잉여라고 부르는데, 지극한 금기로서의 죽음이, 그리고 흥미롭게도 예술이 지목된다. 조르주 아감벤에 의하면 이런 잉여는 때로 법으로부터 조차 보호 받지 못하는 사람들 곧 희생양이 된다. 그리고 기껏해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나 의미가 있을 이 사람들의 성생활이며 건강을 관리하는 제도의 시스템을 미셀 푸코는 생물 권력이라고 부른다(조르주 바타이유는 소비와 낭비와 증여 같은 경제개념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이론에 입문한다. 그리고 조르주 아감벤의 희생양 이론은 미셀 푸코의 권력이론의 해석에 힘입고 있다).

이처럼 작가에게 비둘기는 빽도 없고 줄도 없는 보통 사람들을 상징한다. 때로 가방끈마저 짧은 성실하고 묵묵한 건전 시민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유도 없이 싫은 타자며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그네들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작가는 비둘기를 내세워 설문을 제안한다. 비둘기에 대한 보편적인 의견을 들을 요량으로 인터넷에 관련 글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200건의 댓글이 달렸다. 그 내용을 보면 대략 혐오스럽다, 불쌍하다, 귀엽다, 무섭다, 정도로 요약된다. 비둘기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물은 것이지만, 여기에 사회적 약자며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오버랩 된다. 외관상 양가감정으로 상반돼 보이지만, 사실은 타자를 향한 일관된 혐오와 배제로 모아진다는 점에서 하나같다. 이를테면 타자는 혐오스러운 대상이다(혐오스런 마츠코). 사회적 약자는 불쌍한 존재지만, 동시에 니체는 도덕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타자를 향한 동정심과 자선을 단호히 경계한다. 그건 잘해야 그들을 노예의 상태로 묶어두려는 기획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타자는 귀엽다. 욕망의 대상이다(욕망의 모호한 대상). 이외에도 사회적 약자는 때로 무서운 존재다. 거세된 욕망을 내재화한 존재며, 따라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다. 여차하면 상징계의 질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귀환한 실재계의 주민들이다(프로이트의 억압된 것들의 귀환, 자크 라캉의 실재계, 슬라보예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

그렇게 작가는 혐오스러운, 불쌍한, 귀여운, 무서운 비둘기들을 그렸다. 응시하고 탐색하는(사실은 응시하고 탐색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둘기들을 그렸고, 비둘기의 부리를 가진 남자를 그렸고(현대인의 초상?), 쓰레기 더민지 알 수 없는 꾸러미로 가득한 의심스러운 공간 속에 플라스틱 교통정리 장치를 고깔처럼 눌러쓴 사람과 몰려드는 비둘기 떼를 그렸다(현대인의 타자감정?). 그렇게 구구 거리는 비둘기들 위로 다이아몬드가 떠다니고 방울토마토가 부유한다. 당신은 방울토마토를 따서 불쌍한 비둘기에게 먹이로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다이아몬드의 권능으로 혐오스런 비둘기를 쫓아낼 수도 있다. 이제 비둘기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렸다. 비둘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쥔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무슨 말인가. 화면에 떠다니는 다이아몬드와 방울토마토는 상징이다. 그림 속 캐릭터의 활성 비활성을 결정할 수 있는, 그리고 여기에 상벌을 줄 수도 있는 상징이다(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자본). 이로써 당신은 졸지에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유저가 된다. 덩달아 당신이 비둘기를 어떻게 보는지, 당신이 타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불현듯 분명해진다. 사실을 말하자면 설문(안양 예술도가 생생 모종밭 지원 사업)도, 게임의 도입(심즈 Sims)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신의 주제와 작업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작업으로 하여금 생생한 삶의 축도가 되게 하기 위해 작가가 도입한 방법이다.

 

그동안 주제를 보면 작가의 작업이 보인다. 「숙련과 노하우」(2015~2016), 삶은 서커스의 줄 타는 광대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매사에 기계부품처럼 정확하고 어김없어야 한다(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질 들뢰즈의 제도기계). 「오늘의 기약」(2017), 사실은 미래가 없는 세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한 세대 감정의 역설적 표현이다. 「소란스러운 적막」(2018), 여기서 작가는 정상성으로 포장된 일상성을 뒤로하고 비정상성의 삶의 현장에로 이끈다. 생산적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불모의 현실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미셀 푸코의 정상성과 비정상성 논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아방가르드의 낯설게 하기, 그리고 키치의 대마왕 밀란 쿤데라가 유일하게 인정한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그리고 「비껴진 자리에서」(2019), 작가는 다른 시각으로 보기를 주문한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안중에도 없던 비둘기가 보이고, 안 보이던 타자가 보인다.

 

이 일련의 주제와 작업들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타자로 규정하면서 타자의 시각에서 타자를 본다. 막 30대에 진입한 세대, 삼포세대, 88만원 세대의 성실하고 묵묵한, 기약이 없는, 어쩜 자신도 모른 채 비정상과 불모의 공모자가 된(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세대 감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비둘기의 눈으로 우화 도시를 보고, 회색처럼 우울한 우의적(알레고리적)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Pigeons, and depressed or dry, and gloomy or cheerful fables of a city

 

Kho, Chung-Hwan / Art Critic

 

The pigeon represents the city bird. There are pigeons everywhere in the city. There are, of course, pigeons in plazas and parks, and also at the platforms of above ground and underground trains, the streets, and even on highways. At first the city was not their living place. There are still wild pigeons in the forest but these pigeons seem to have firmly decided to live in the city. Is living around human beings good? No. It is more likely they adjusted to circumstances. It is more correct to say that they live around human beings because they have to. And they are now despised inhabitants of the city.

 

“Do not feed the pigeons.” “Help pigeons stand on their own by finding food by themselves.” These are the notices at places where pigeons often gather. Do people feed pigeons? Is it from altruism? It is not. It is actually from the complete opposite interest. People just do not like how pigeons shit everywhere, raise dust, surprise us with unexpected wing flapping, walk with their unique sound and movement of the head, and watch with their emotionless eyes. Also, even if it is not proven, people suspect that they cause short circuits. There might be numerous reasons to dislike pigeons. Are they appropriate? Who can be so sure that pigeons have no emotion? Can pigeons’ natural habits be a reason to dislike them? People just do not like pigeons. They do not like them because pigeons are so common. They do not like them because they are often seen and they are lazy. We do not like that they cannot fly well, and that they seem to conflict flying with crying.

 

That people dislike pigeons is the reason that this artist brings pigeons into her work. She presents pigeons acting as people do and attempts to symbolize people’s lives. Specifically, pigeons represent common people who are this society. Georges Bataille calls them human surplus, and Giorgio Agamben calls them naked men (Homo Sacer). A capitalist society is mainly driven by the laws of economy and maximum efficiency and therefore, things that lack economic feasibility and efficiency exist on the edges of society. Georges Bataille calls them surplus, and death as a taboo and (interestingly) art are included. According to Giorgio Agamben, this surplus makes people who are not protected from the laws scapegoats. The system securing the necessary labor for society or managing a meaningful sex life or health is called biological power by Michel Foucault. (Georges Bataille introduces the social theory of capitalism through the economic concept of consumption, dissipation, and giving. Giorgio Agamben’s scapegoat theory is strengthened by the interpretation of Michel Foucault’s theory of power.

 

In this respect, the pigeons in the artist’s work symbolize ordinary people who do not have connections or supporters. They are healthy citizens who are not highly educated but faithfully work in their role. At the same time they are people who are disliked without any specific reason, living as second-class citizens. In order to bring out their thoughts, the artist asks her question with pigeons. First, she wrote a text on the internet to hear common opinions about pigeons and received 200 replies. The replies said that pigeons are disgusting, poor, cute, and scary. It was written to learn about pigeons but what the replies said overlapped with how people see disadvantaged people. From the outside it seems that there are two different feelings but in fact the opinions are consistently summed up as hatred and exclusion. For example, others are considered to be disgusting objects. Disadvantaged people are considered to be poor but people are not likely to be compassionate and charitable as in Nietzche’s ethics. Even if it seems that people try it ends up as a plan to hold others as slaves. Also, others are depicted as being cute because they are subjects to be desired (ambiguous subjects of desire). When others are treated as scary beings, they represent castrated desires that can blow up anytime. They are citizens in reality, naturalized to incapacitate the order in the world of symbolization (Welcome to the return of Freud’s suppressed things, Jacques Lacan’s real order, Slavoj Zizek’s real desert, and Claude Chabrol’s consciousness).

 

With this story, the artist paints disgusting, poor, cute, and scary pigeons. In her work there are pigeons watching and exploring (in fact, they seem to watch and explore), men with a pigeon’s mouth (a portrait of contemporary men?), and people wearing a plastic road safety rod on their head in a space fulled with a mountain of trash or just empty boxes and pigeons coming from the back (contemporary men’s feeling towards others?). Diamonds and cherry tomatoes are floating above them. You can pick cherry tomatoes to feed poor pigeons or use the power of diamonds to kick out disgusting pigeons. From now on the destiny of pigeons is in your hands. You now have the power to choose the destiny of pigeons. However, the power is not just given. You have to buy it with money. What am I talking about? They are the symbols of the diamonds and cherry tomatoes in the artist’s work. The symbols can define being the characters in the work and dispense reward and punishment (Pierre Bourdieu’s symbolic capital). You are now suddenly in a game and become the main player. At the same time, how you see pigeons or how you treat others becomes clear. To be clear, this is not actually the first attempt. For example, there was the seedling support project Anyang Foundation for Culture & Arts Project and a game called Sims. It is meaningful because the artist uses this method to secure the objectivity of her subject and bring the vitality of life into her work.

 

By looking at previous work the whole intent of her work can be seen. In「Skills and Knowhow」 (2016), life is not stable like a tightrope walker who walks on a rope in a circus. In order to not fall off the rope one must be certain and sure every time - like a part of machine (Charlie Chaplin’s modern times and Gilles Deleuze’s drafting machine).「Pledge of today」(2017) paradoxically described the gloomy generation today without a future and that cannot promise a tomorrow. In「Deafening Silence」

 (2018), the artist talked about unusual lifestyles wrapped in ordinary aspects. From the outside it seemed productive but it actually focused on a barren reality (the stationary and non-stationary discussion by Michel Foucault, the estrangement effect by Bertolt Brecht, the making unfamiliar by Avan-garde, the king of the devil by Kitsch, and the very loud solitude by Milan Kundera’s only recognized writer Bohumil Hrabal) In「In a detached position」(2019), the artist suggested looking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In a different point of view unrecognized pigeons are seen as well as others.

 

In those subjects and the work the artist defined herself as the third person and attempted to see herself from a third point of view. It represented the generation of the young that just turned into their 30’s called the Sampo generation or the 880,000 won generation in Korea. This generation steadily built a career without any specific promise and became a conspirator with abnormality and barrenness without knowing it (Pierre Bourdieu’s Avitus). And it sees fables of the city with the eyes of pigeons and showing an allegorical side of life gloomy as the color 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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